네 달 전에 쓴 어떤 소설



을 네 달 만에 다듬었다. 이번주와 지난주 중 틈틈이. 그러나 아직 '동료 케이'와 '케찹깡통'이 문제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저 좋은 사람>과 <그대의 차가운 손>, 이 두 권의 장편과

단편집<경찰서여, 안녕>을 읽었다.

각각  넓으며 아름답고, 가슴 서늘하면서도 지겹고, 재기발랄하며 따끔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인도와 미국이라는 공간이 아직 내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 예술애호가보단 차라리 예술가가 좋다는 사실,

경찰과 매춘남성들에의 낯설음(혹 고정관념)을 확인할 수 있있고,

여러 개의 모티프가 마구 튀어나오는 단편과 하나의 모티프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단편이 어떻게 다른지

완전하게는 깨닫지 못하여  계속 씁쓸하다. 


아, 케이와 케찹깡통..



 그리고 또.

미니픽션수업과 관련하여 며칠 전부터 넘겨보는 야스나리의 <손바닥소설>에는

아직 빠져들지 못하고 있다.


by heve | 2010/03/17 00:16 | BUCH | 트랙백

밀란쿤데라 <소설의 기술>


'소설은 서정성의 폐허위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저는 제대로 못 낳는 건가요?


20년 뒤에 쓴 <더 커튼>과 병행하여 읽고 있는데, 읽으며 무언가 위안받고 많은 걸 의심하게 된다.
실존, 실존.


입으로 까불지말고 액션을 취해라


by heve | 2010/02/09 01:44 | BUCH | 트랙백

보이 A


아이였을 때 (아마도) 친구와 함께 더 어린 아이를 죽여 수년간 감옥에 있다 나온 청년의 이야기였다.

그의 현재 모습은 극소수만 알기때문에 울타리밖 사회에 불안하게나마 편입될 수 있는 것 같았다.


짧은 동안이었으나 그와 서로 사랑한 여인이

죽거나 해외로 간 그의 부모보다, 그 누구보다 먼저

소년범의 옛 사진과 현재의 그를 오버랩시켜버렸고, 그래서 말없이 숨었고

그에게 동료애라는 감정을 처음 알게한 사나이들이 그가 나온 특종기사 하나 보고 간단하게 절교의 욕설을 퍼부었다. 



그를 시기하게 된 참으로 슬프고 엿같은 포지션, 또래 아무개의 수작으로 세상에 공개된 더러운 기름 한 방울은

발악없이 바다에 뛰어드는 것 같다.



 -또래집단과 가족과 범죄자와 선량한 시민과 또 규정하기 힘든 수많은 그룹들의 교집합들과

   애인과... 

다 덮었을 때는 모호했으나 사오 일 지나니 알 것 같다.
몸만 자란 소년과 포근한 여인의 서툰 사랑도 쓰고 귀했으나
범죄자 A를 시기하게 된 청년과 그의 아버지가 이 소설을 있게 한 것이란 걸.




by heve | 2010/01/19 00:32 | BUCH | 트랙백

박완서소설집


연말연시- 우연히 박완서작가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읽었다.
소설집이었는데 80년대의 작품임에도, 아니 그시절 작품이기때문인지
요즘 젊은작가들의 것과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좋았다. 바늘처럼 이불처럼.

남편옥바라지를 하게 된 얌전했던 부인의 이야기와
2세를 낳아본 적 없는 낙태전문의의 액션과
아들을 앞세운 엄마의 심정 등이
군더더기없이 뜨여져있었는데

책을 덮고 보니 좋은 의미에서의 보수주의가 무언지 
조금 짐작이 되었다.
한국적이라는 말도.



 

by heve | 2010/01/03 21:17 | BUCH | 트랙백

안녕,엘레나 / 김인숙소설집



기억이 맞다면, 몇년 전 읽은 소설 '칼에 찔린 자국'을 쓴 이가 김인숙이었을 거다.

이번 소설들을 읽으니, 

소설가라면 소설을 쓰지 않는 이들보다, 훨씬 더 뻔뻔해야겠다는 느낌이 든다.

 -공감능력,상상력은 어쩌면 둘째일지도.



 원양어선을 탔던 아버지를 둔 딸,

그놈 이완용,

열두 번 출산한 88세 할머니,

기러기아빠가 된 어떤 파일럿,

참다른 중년의 쌍둥이 남녀,

살인미수자와 그의 남편과 제3자,

등    이번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조금 특별한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었다.


 그들과 그들의 가슴을 건드는 존재의 관계가

오늘처럼 푹해서 재미없는 겨울날, 귀하게 샀으나 이제 처치곤란한 옷과 관련될 수 있는 질감으로

고르지 않게 짜여져 있었다.


쓰다듬을 수 있지만 이제 쓰다듬기 싫은 일기장처럼 가족을 느끼거나

작품,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좋게 봤다면 추천하겠다.





by heve | 2009/12/10 01:33 | BUCH | 트랙백

강우진의 러브


강우진이 부르는 곡 러브.

일주일동안 말을 안하다가 만난 친한녀석들과 수다를 지나치게 떨었을 때 거의 저정도로 목이 쉰 적 있었지.

목소리가 저렇던, 군인아버지와 사이가 안좋던 선배는 아직도 책을 만들고 있을까?



 까마득한 이틀 전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게 된 작가의 소설집을 막 다 읽었더니   아무렇지 않다.


나보다 열한 살 많기때문에 더 잘 쓸 확률이 높지만, 나이와 출신지와 직업 등과 관계없이

누구보다 진지했고 예민한 사람이어오고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찰력은 또.

사람간, 사람과 환경관의 관계를 이렇게 섬세하게 써내주니 조금 다행.

 
 공감과 액션을 버리려할때마다

만나게 되어 기쁘다.


by heve | 2009/12/06 22:58 | 트랙백

노벨상수상자



2008년 수상자 르 모씨의 책이 꽂혀있었다.
집들이. 집뜰이?

책장에서 새벽 세 시경 발견한 책을 슬금 읽어보았다.

-빈집에 거주하는 아담의 방안 나른한 행태와 담배구매와 연인인지 모를 이를 불쾌하게 만드는 선문답들.  

60쪽까지 읽었을 때 고개를 쳐들던 손님 A의 회의는 신혼집 손님 둘과 신부의 코콜이보다 상당했다.


 아무 것 아닌 걸 끊임없이 속삭여 독자들을 움직이게 하고싶다던 르 모씨.
아무 것은 그럼 무엇이고, 지구력 없고 단말마적인 순발력만 있는 모모씨는 그럼 어찌해야 하는거?


 분노라기엔 부족했지만 르 모씨의 결과물 또는 그 번역물 탓에 확 들었던 말도 어려운 니힐리즘.



그래도   어쩌겠어요?


by heve | 2009/11/29 01:57 | BUCH | 트랙백

작은 요리


최근 사먹은 메뉴들의 퀄리티가 상당히 저조했던 관계로

간만에 장을 보았다. 정말, 새우를 그렇게 모욕하다니.

 
일본 카레와 쌀국수와 프레시안 레토르트 크림소오스와 버섯, 매운고추, 흰살생선 등.

쌀국수를 칠 분 여 끓인 뒤 얇게 썬 고추와 버섯, 흰살생선 조각, 크림소오스를 넣고 졸여주다가 마지막으로 후추를 살짝 투하.


그렇게 완성된 크림쌀국수는 고소하되 느끼하지 않았고, 제법 매콤하여 똠냥꿍 먹듯 바닥을 보여주었다.

빈티지해진 갓김치도 몇 번 집어먹고.



역시...귀찮아 하지 말고    액션 !



(이기호가 쓴 '사과는 잘해요' 는 질투는 나지 않았으나, 깊은 작품.)




by heve | 2009/11/24 17:49 | 감각의 맹활용 | 트랙백

절망의 구'


 전에 없던 검은 구가 스스로 움직이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빨아들인다.

서울남자는 가족과 지인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끈질기게 이 구에게서 도망치지만, 

정작 구는 남자를...


 재밌고 탄탄하지만 꽤 폐쇄적인 소설이었다.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살려면 시스템을 파고들어야한다, 던 김영진의 '불신지옥'비평 마지막 문장이 

이 소설의 막장을 덮을 무렵 꼬리를 물고 떠올랐는데,

그건 한국사회의 불순한 시스템은   뭔지 모를 사람먹는 구 정도는 몇 개 나타나줘야

그래서 모두 죽다살아나야

재구성될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소설가의 도발 오알 막무가내가 

괜한 짓으로 느껴지지 않았기때문.


 


  

by heve | 2009/11/10 15:39 | BUCH | 트랙백

결국 간 <파주>시사회.



 각종 탈 것을 갈아타고 북한스런 바람의 땅 파주에 다녀왔다.


갑갑하면서도 싫지 않았던 영화 <파주>.

왜 갑갑하였나면. 

2001년 새내기 당시 아주 조금 맛보았던 운동권 학생들-선배들과의 전통주점 벽색깔같던 모임이 생각나서,

라기보다는

뭐랄까..........................자유롭지만은 않은 부모없는 2세들의 일상과 도망중인 수배자의 몸짓과 

이중적인 목사의 무표정과 

북한 밑 무구하며 구질구질한 동네 외관과 그 대사 한 마디 없던 이경영 나이트크럽 사장의 눈빛때문에.


그럼에도 왜 괜찮았느냐.

혈연, 로맨스, 아가페, 거주지, 관념 등으로 씨줄 날줄 촘촘히 엮인  인간관계들이 어떻게 '우연히' 호되게 끝이나고 

새롭게 시작될 수 있는지가 기름기 없이 재현됐기때문에.

 
그러니까  인간관계를 변화시킬만한 능력이 있기는 커녕 그것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처할 힘이 두려움보다 훨씬 약한,

아무것도 없거나 뭘 가졌는지 모르는  관계론자와 존재론자의 중간적 존재가

방구석에서 흐느끼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조차 마음대로 못 빚는 이들이 과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내게도 적용되는 착잡함을 건넸기때문에.



누구를 소외시키고 둘만 보는 이기적인 로맨슨줄 알았는데........
제기랄.






by heve | 2009/10/21 16:59 | 감각의 맹활용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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